트럼프 전기차 정책 후퇴, 한국 배터리 산업 수십조 투자 먹구름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전기차 정책 후퇴가 현실화되면서 한국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가 미국에 투입한 수십조 원 규모의 투자가 위험에 처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축소와 전기차 세액공제 폐지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한국 배터리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구축해온 경쟁 우위가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IRA 효과로 급성장한 한국 배터리 산업의 현주소
미국 시장 점유율 1위 달성의 배경
한국 배터리 3사는 2023년 미국 배터리 시장에서 42.4%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일본(40.7%)을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 이는 2021년 대비 6.2%포인트 상승한 수치로, IRA 효과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특히 IRA 전기차 구매세액공제 배터리 요건이 한국 기업에 유리하게 결정되면서, 한국산 배터리에 대한 미국 내 수요가 급증했다.
산업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IRA로 인한 한국산 차량의 미국 판매량 증가는 24.1%에 달했으며, 이에 따른 K배터리 판매량은 1.08% 증가했다. 비록 직접적인 배터리 판매량 증가폭은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지만, 이는 전체 시장 규모를 고려할 때 상당한 수익 증대 효과를 가져왔다.
대규모 미국 투자 현황
한국 배터리 3사는 IRA 효과와 미국 시장 성장성을 고려해 미국 내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한국 배터리 업계의 미국 내 총 생산 용량(CAPA)은 2023년 117GWh에서 2027년 635GWh로 5배 이상 증가할 예정이다. 이는 약 50조 원에 달하는 투자 규모로, 한국 배터리 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 투자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시간주에 단독 ESS 공장을 건설하고 있으며, 오하이오주와 테네시주에도 대규모 생산 기지를 구축했다. 2021년 173.5GWh였던 생산능력을 2025년 505.5GWh, 2030년 1079.5GWh로 확대할 계획이다.
삼성SDI는 조지아주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건설 중이며, 차세대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라인도 미국에 구축할 예정이다. 특히 46파이 배터리(4680, 4695, 46100, 46120) 라인업을 통해 미국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SK온은 조지아주와 켄터키주에 포드, 현대차와의 합작 공장을 운영하며, 2024년까지 니켈 94%의 초고에너지밀도 배터리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트럼프 정책 변화가 가져올 직접적 타격
IRA 세액공제 폐지의 파급효과
트럼프 행정부는 전기차 구매 시 최대 7,500달러를 지원하는 IRA 세액공제를 폐지하고, 연간 250달러의 전기차 요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전기차 수요를 직접적으로 위축시켜 배터리 수요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첨단 제조 생산 세액공제(AMPC) 조기 폐지다. 현재 2033년 초 폐지 예정이던 AMPC가 2031년 말로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 배터리 3사는 2025년 1분기에만 AMPC로 총 7,379억 원(LG에너지솔루션 4,577억 원, SK온 1,708억 원, 삼성SDI 1,094억 원)의 혜택을 받았다. 이러한 세액공제가 사라지면 수익성 악화는 불가피하다.
전기차 시장 성장 둔화
트럼프의 "전기차 의무화 폐지" 선언은 미국 전기차 시장의 성장 동력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킬 것이다. 바이든 정부가 2030년까지 탄소 배출 제로 차량 판매량을 50%까지 끌어올리려던 목표가 사실상 폐기되면서, 전기차 보급 속도가 현저히 둔화될 전망이다.
이는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미래 수익을 기대하며 단행한 대규모 투자의 회수 기간을 연장시키고, 투자 수익률(ROI)을 크게 떨어뜨릴 것이다. 특히 2025-2027년 중 상업 생산을 시작할 예정인 다수의 공장들이 가동률 저하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배터리 3사의 현재 위기 상황
2025년 1분기 전면 적자 충격
한국 배터리 3사 모두가 2025년 1분기 적자를 기록하면서 업계 전체가 위기감에 휩싸였다. 이는 글로벌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과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LG에너지솔루션은 1분기 매출 6조 2,650억 원, 영업이익 3,747억 원을 기록했지만, 전년 동기 대비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다. 특히 ESS 부문이 계절적 비수기를 맞으면서 전체 실적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삼성SDI는 1분기 매출 3조 1,768억 원에 영업손실 4,341억 원을 기록하며 가장 심각한 상황을 보였다. 전고체 배터리와 46파이 배터리 등 차세대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지만, 단기 수익성 개선에는 한계를 드러냈다.
SK온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올해 시설투자를 전년 7조 5,000억 원에서 3조 5,000억 원으로 절반 이하로 감축했다. 이는 투자 여력 부족과 미래 불확실성에 대한 방어적 대응으로 해석된다.
중국 업체와의 점유율 역전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에게 점유율을 내주고 있다는 점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4년 1분기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이 42.0%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한국 배터리 3사(40.3%)를 처음으로 추월했다. 불과 2년 전 한국이 26.9%포인트 앞섰던 것과 대조적인 상황이다.
이는 중국 업체들의 공격적인 가격 경쟁과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시장 확대가 주요 원인이다. 중국의 CATL, BYD 등은 저가 LFP 배터리로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으며, 한국 기업들이 강점을 가진 하이니켈 배터리 시장도 위협하고 있다.
투자 회수 위험과 전략 재조정 불가피
ROI 악화와 투자 재검토
한국 배터리 3사가 미국에 투입한 수십조 원의 투자는 IRA 혜택과 미국 전기차 시장 성장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정책 변화로 이러한 전제 조건이 무너지면서 투자 회수 기간이 크게 연장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2025-2027년 중 가동을 시작할 예정인 공장들의 가동률이 계획 대비 크게 떨어질 경우, 고정비 부담이 수익성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이미 SK온은 올해 시설투자를 절반으로 줄이는 등 방어적 전략으로 전환했으며, 다른 기업들도 유사한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 가속화
위기 상황에 대응해 한국 배터리 3사는 전기차 의존도를 줄이고 ESS, UAM(도심 항공 모빌리티)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ESS 시장은 2025년 약 5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재생에너지 확산과 함께 지속적인 성장이 기대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시간주에 ESS 전용 공장을 건설하고 있으며, 베어로보틱스와의 협력을 통해 로봇 산업에도 진출했다. 삼성SDI는 전고체 배터리 기술을 활용한 프리미엄 시장 공략에 집중하고 있으며, SK온은 글로벌 검증센터 구축을 통한 품질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위기 속에서 찾는 새로운 기회
중국 견제 정책의 반사이익
트럼프 행정부의 반중 정책은 한국 배터리 기업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AMPC 수령 조건에 '금지된 외국 단체(중국)'와의 협업 제한이 포함되면서, 중국 기업들의 미국 시장 진출이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중국 기업과의 라이센싱 가치가 100만 달러를 초과하거나 중국 기업으로부터 부품 지원을 받을 경우 AMPC 수령이 불가능해지면서, 상대적으로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부각될 수 있다. 이는 미국 완성차 업체들이 중국 배터리 대신 한국 배터리를 선택할 유인을 제공한다.
기술 혁신을 통한 차별화
한국 배터리 3사는 전고체 배터리,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 등 혁신 기술 개발에 집중하며 중국 업체들과의 차별화를 추진하고 있다. 삼성SDI의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라인, LG에너지솔루션의 4680 배터리 양산 공장, SK온의 니켈 94% 초고에너지밀도 배터리 등은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한 프리미엄 시장 공략이 가능하다.
특히 전고체 배터리는 안전성과 에너지밀도 측면에서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를 크게 앞서며, 상용화에 성공할 경우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 기업들이 이 분야에서 선도적 위치를 확보한다면, 트럼프 정책 변화에도 불구하고 경쟁 우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전망과 대응 전략
단기적 어려움 지속 전망
2025년 하반기까지는 전기차 캐즘과 트럼프 정책 불확실성으로 인한 어려움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IRA 관련 법안들이 의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추가적인 변동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전기차 전환 트렌드 자체가 역행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과 중국 등 다른 주요 시장에서는 여전히 전기차 보급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미국 내에서도 캘리포니아 등 일부 주는 독자적인 친환경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생존을 위한 핵심 전략
한국 배터리 3사가 현재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원가 절감과 기술 혁신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LFP 배터리 시장 확대에 대응한 저가 제품 라인업 구축과 함께, 전고체 배터리 등 차세대 기술을 통한 프리미엄 시장 공략이 필요하다.
또한 지역별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통해 미국 시장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 유럽, 동남아시아 등 성장 잠재력이 높은 지역으로의 진출 확대와 함께, ESS, UAM 등 비전기차 분야로의 사업 영역 확장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정부와의 협력을 통한 정책 리스크 관리가 필수적이다. 미국 내 투자가 해당 지역 경제에 미친 긍정적 영향을 적극 어필하고, IRA 폐지 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미국 정책 당국에 지속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한국 배터리 산업은 현재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트럼프 정책 변화라는 외부 충격과 중국 업체들의 도전이라는 내재적 위험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지만, 기술 혁신과 전략적 대응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잠재력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 2025년은 한국 배터리 산업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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